난지도역사

매립 당시 난지도
서울 쓰레기의 집합소
 
쓰레기하차 1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빽빽하게 살고 있는 거대도시 서울. 난지도는 지난 1978년 3월부터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뱉어내는 과욕과 허영의 산물을 꾸역꾸역 받아냈습니다. 급격하게 휘몰아치던 도시화,산업화의 물결과 더불어 서울이 급격하게 팽창하면서 그만큼 늘어난 배설물들을 수용했던 이곳은 개발과 풍요의 찌꺼기로 메워지게 되었습니다.

15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꽃 피고 새가 날아들던 난지도는 어느 새 높이 100여 미터 가까이에 이르는 거대한 쓰레기산 두 개로 변했습니다.
쓰레기에서 나온 침출수 한편 난지도 근처에 있는 비슷한 크기의 모래섬이었던 여의도는 60년대 말부터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악취와 오염의 쓰레기장이 되어 버린 버려진 땅, 난지도와는 대조적으로 이곳은 은행과 증권사, 방송,언론사가 위치한 대도시의 심장, 서울의 맨하탄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난지도가 쓰레기 매립지가 된 것은 당시 쓰레기 매립장으로 사용하던 잠실과 장안동, 상계동 등의 매립장에 쓰레기가 가득 차자 대규모 쓰레기 매립지를 찾아야 했고,그로 인해 서울시가 시내 외곽지이면서 교통이 편리한 몇 개소 중 난지도를 선택하면서 부터입니다.
쓰레기차 행렬 그 후 난지도 약 272만㎡(82만 3천평)의 땅에는 무려 9,200만톤의 폐기물이 매립되었습니다.

난지도의 오염은 이제까지 서울이라는 도시가 겪었던 성장의 뒷모습이기도 했습니다. 경제발전은 도시민에게 풍요를 가져다 주었지만 그와 비례하여 쓰레기의 양도 늘어만 갔습니다. 70년대 본격적인 경제개발과 함께 가전제품 등 각종 공산품의 국내 생산이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소비문화가 확산되면서8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는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일반 쓰레기의 처리가 골치아픈 과제가 되었습니다.

생활방식의 변화에 따라 쓰레기의 종류도 변했습니다, 70년대 난지도에 들어왔던 쓰레기의 대부분은 연탄재였지만 이후부터는 가전제품이나 1회용품의 주재료인 합성수지들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매립장 화재 난지도에는 먼지, 악취, 파리뿐만 아니라 매립된 쓰레기 더미에서 유해가스(메탄)가 발생하여 수시로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하였으며, 난지도의 화재는 소방차로는 곤란하여 불도저를 동원하여 흙으로 진화를 하여야 했습니다. 이렇게 발생한 화재가 15년간 총 1,390여회로 최고 45일간 지속되기도 하였습니다.

화재시에는 가정에서 버린 부탄가스통이 폭발하여 하늘로 뛰어올라 처음보는 사람에게는 장관이었지만 화재를 진압하는 사람들에게는 여간 곤란한것이 아니었습니다.

난지도의 쓰레기 매립방법은 비위생 단순 매립으로, 이것은 일반 생활쓰레기 및 산업폐기물을 구분해서 묻지 않고 단순히 되는 대로 쌓아놓았다는 뜻입니다. 사실은 쓰레기를 매립했다기 보다 생활쓰레기, 건설폐자재부터 산업폐기물, 하수 슬러지에 이르기까지 각종 오염물질을 그대로 얹어놓은 것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당초 서울시에서는 국제적인 매립장의 일반적인 높이인 45m까지 쓰레기를 매립하기로 계획했었지만 수도권에 건설하기로 했던 매립지 건설이 늦어지면서 난지도에 쓰레기를 계속 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쓰레기들이 모여 거대한 쓰레기 산 두 개를 이뤘던 것입니다. 때문에 난지도의 경우, 위생 매립 방식을 택하고 있는 김포 쓰레기 매립장이나 선진 외국의 쓰레기 매립장과는 달리 오염의 정도가 훨씬 심각했습니다.
 
 
 
" 난지도 쓰레기 산 위로 쏟아져 내리는 불볕은 저주였다.
그 산에 살아있는 것이 있다면 썩어 가는 일과 썩어 가는 냄새뿐이었다."
- 정연희, <난지도> 中
 
쓰레기 더미 위에 사람들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썩어 가는 일과 썩어 가는 냄새뿐'이었던 난지도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쓰레기 산 아래서 삶을 꾸려나갔던 이들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지도의 쓰레기 언덕 아래 주민들의 거주지가 있었습니다.
쓰레기에 삶을 걸었던 가난한 이들, 폐품수집원들의 보금자리였던 조립주택단지가 그곳입니다.

난지도의 쓰레기 산은 그들의 중요한 생존 현장이었습니다.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그리고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서 궂은 일을 마다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른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악취가 나는 쓰레기 더미를 헤집고 폐품을 모아야했던 난지도 주민들은 땅 속에 파묻힐 물건들을 가려내 재활용한다는 소박한 자부심도 갖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이들은 쓰레기 더미 위에 비닐을 치고 마을을 형성해 살았습니다. 빽빽이 들어찬 가건물에 살면서 공동 화장실을 사용했던 주거환경에서 삶의 질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사치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쓰레기 더미에서 나오는 가스 탓에 걸핏하면 화재가 나기 일쑤였고, 이 때문에 일어난 1984년의 대형 화재는 결국 폐품수집원 정착촌을 완전히 불태워버렸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인근에 3-4평 짜리 조립식 주택을 지어 9백 50여 세대를 무료로 입주시켰습니다. 조립식주택단지는 이렇게 형성되었습니다.

난지도 매립장이 폐쇄되면서 사람들은 하나 둘 난지도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92-93년부터 진행되어온 주민보상 및 이주대책으로 아파트분양권을 얻어 이주해 나가거나 영구임대아파트 등으로 주민들이 이사한 후 조립식주택단지는 철거되었고 이제 더 이상 난지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습니다.

위대한 자연의 힘으로 제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는 난지도는 쓰레기 문제의 대명사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21세기의 새로운 유토피아로 변화하였습니다.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폐품수집원들의 삶의 터전에서 이제 서울 시민 전체의 희망의 땅으로 새롭게 거듭난 것입니다.
image
quickmenu 월드컵공원 공원안내도 하늘공원이용 애완동물출입 주차안내 오시는길 프로그램예약 체육시설예약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