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도역사

매립전난지도
난지도는 난초와 지초가 자라고 철따라 온갖 꽃이 만발해 있던 아름다운섬이었습니다.
 
 
정선(1676~1759)의 금성평사 난지도는 난초와 지초가 자라고 철따라 온갖 꽃이 만발해 있던 아름다운 섬이었습니다.
물이 맑고 깨끗하여 새들의 먹이가 되는 수생 동식물 또한 풍부해 겨울이면 고니 떼와 흰뺨검둥오리 등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자연의 보고였습니다.

난지도는 망원정 부군에서 한강과 갈라진 난지 샛강이 행주산성 쪽에서 다시 본류와 합쳐지면서 생긴 섬이었 습니다. 한강 하류 삼각주로 편마암 지대인 난지도에는 자연스러운 모양의 제방이 있어서조선 말까지 놀잇배가 정박하는 곳으로도 이용되었습니다.

옛 선조들은 나라의 정사가 잘 되는지를 알려면 난지도에 핀 꽃들을 보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지리서인<택리지>에는 난지도가 좋은 풍수조건을 가진 땅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사람이 사는 터로 가장 이상적인 풍수조건은 강을 타고 굽이굽이 바닷물이 거슬러오는 길목에 굵고 단단한 모래로 다져진 땅입니다. 또 그런 땅에서 솟아난 담수가 사람에게 가장 좋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와같은 풍수 조건을 갖춘 땅이 난지도였던 것입니다.
1978년 쓰레기를 매립하기 전, 난지도는 땅콩과 수수를 재배하던 밭이 있던 평지였습니다.
낮은 땅이었기 때문에 홍수 때면 집이 물에 잠기는 고통을 겪기도 했지만 학생들의 소풍장소나 청춘남녀의 데이트 코스로 사랑 받았으며 애정영화의 세트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던 아름다운 섬이었습니다.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꽃으로 가득했고, 오랜길을 날아온 새들이 쉬어갈 정도로 아름다웠던,이름마저도 향기로운 섬, 난지도. 이곳이 악취가 풍기고 오물이 넘쳐나는 쓰레기 산이 되었던 것은 역사가 만들어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1970년도 초 쓰레기 매립전의 난지도 모습
상암동의 상징,난지도
난지도 주변지도(1919년)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 549번지 일대, 남쪽으로 홍제천, 북쪽으로는 성산천, 또 동쪽으로는 샛강 난지천에 둘러싸인 272만㎡(82만3000평) 의 땅. 위치로 볼 때 난지도는 서울시 마포구 한강 하류에 발달한 범람원으로 북쪽 한강 가에 치우쳐 있으며 행정구역상 상암동에 속해 있습니다.

수색동 앞 넓은 들 건너 마을인 '상암동(上岩洞)'이 이런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장마가 지면 한강 물이 이곳까지 넘쳐왔다고 해서 비롯되었으며, '상수시리'와 '휴암'이라는 지명을 섞어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상암동은 경기도 고양군에 속해 있다가 1949년 서대문구에 속하게 되었고 다시 1975년 10월 성산동과 함께 마포에 속하게 되면서 오늘에 이릅니다.

이곳은 귀이깨, 모르치, 물치, 구릉지 같은 예쁜 이름들로도 불렸습니다.
난지도의 이름
언제부터 난지도라 불렸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난지(蘭芝)'는 난초와 지초(芝草)를 아우르는 말입니다. 난(蘭)과 지(芝)는 모두 은근한 향기를 지닌 식물로, '난지'란 흔히 지극히 아름다운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대동여지도의 경조오부도 한 예로 지초(芝草)나 난초와 같이 그윽한 향기가 나는 두 사람간의 절친하고 고상한 사귐을 우리는 '지란지교(芝蘭之交)'라 표현합니다. 난지도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들은 약 대여섯 개에 이릅니다.

난지도(蘭芝島)는 철따라 온갖 꽃이 만발해있어'꽃섬' 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김정호의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나 <수선전도(首善全圖)>에는 꽃이 피어있는 섬이라는 의미의 '중초도(中草島)'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구한말까지는 이 명칭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또, 오리가 물에 떠있는 모습과 비슷하게 생겼다 하여 '오리 섬' 또는 '압도(鴨島)'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여러 종의 철새 수십만 마리가 겨울을 나기 위해 한강으로 날아들면서 바로 이 난지도 위에서부터 내리기 시작한다고 하여 옛 시인들은 '문섬(門島)'이라 미화해 부르기도 했습니다.
image
quickmenu 월드컵공원 공원안내도 하늘공원이용 애완동물출입 주차안내 오시는길 프로그램예약 체육시설예약 HOME